'공간 속의 새'를 보면서 소망의 날갯짓을 해봅니다. 본질을 보게 하소서!!
오늘 오프닝엔 미술 작품 사진을 공유합니다. 바로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공간 속의 새]란 작품인데요. 브랑쿠시는 로댕의 제자였는데요. 오늘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로댕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갑니다. 대신 그는 본질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본질을 보는 자만이 새로움을 만들 수 있다]

오늘 사진을 보시면 이 조각상은 허공을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이 조각상이 새를 닮지 않았습니다. 날개와 부리는 없고 오히려 촛불 모양을 닮았습니다. 허탈해하는 사람들에게 브랑쿠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물고기를 보면서는 우리는 비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고기가 움직일 때마다 발산하는 빛과 날쌘 동작에는 시선을 빼앗깁니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바로 본질입니다. 바로 외형이 아니라 핵심 말입니다. 저는 새의 퍼덕이는 날갯짓, 깃털을 통해 속도감을 표현했습니다. "
공간 속의 새, 퐁피두 센터 [사진: Cultura la vană]
브랑쿠시는 본질을 바라보기 위해 일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하는데요. 본질을 찾고자 했던 그의 시선이 궁금합니다.
짧은 구절을 통해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방송에 복음의 본질이 투영되어야 하는데... 그리고 그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새로움이 가득해야 하는데... 본질을 보는 자가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데.... "
화가에게 눈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죠? 본질을 들여다보고 끄집어낼 수 있는 화가처럼 우리도 본질을 봐야 합니다. 내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도.. 3개의 성경 구절을 통해... 심플하게 방송 주제를 삼았습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에베소서 2장 3절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갈라디아서 4장 7-8절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로마서 15장 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본질을 보는 자가 새로움을 만들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주님을 언제든 부를 수 있습니다. 깊은 밤에도, 외로운 아침에도, 따뜻한 한 끼를 먹고 싶은 순간에도...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론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뜻밖의 장소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하는 나의 하루, 오늘의 본질은 기쁨이고 소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