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감동오프닝
3대째 뼛속까지 깊은 불교 가문에서 태어나 자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강원도 백암산 백암사의 창건주이자 불교 신도회장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한국 불교 태고종의 주지 스님으로 74년 평생을 보낸 분이었습니다.
가문이 이러하니, 그 역시 운명처럼 동자승으로 자라납니다. 이후 정식 승려가 되어 태선이라는 법명을 얻고 무려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태선 스님으로 활동합니다. 그런데.. 이 분이 목사님이 됩니다. 김진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스님이 목사가 된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우주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며, 영적 대지진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수많은 불자들의 소원 기도를 올려주고, 죽은 영혼을 달래는 49제를 지내던 그가 시주 공양을 받으러 목탁을 치고 있었습니다.
한 낯선 청년이 다가와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건넸습니다.
"스님, 이제 그만 목탁 두드리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태선 스님은 기가 차서 대꾸했습니다.
"이 사람아, 구원이 뭔지도 모르지만 거짓말하지 마라. 인생은 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인과응보의 업보를 치러야 하는 존재다. 천하의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열반하셨는데, 예수 믿으면 영원히 산다니 그런 사기극에 속지 마라. 지옥 불에 떨어질까 두렵다."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물러서지 않고 작은 신약성경 한 권을 쑥 집어넣고 사라졌습니다.
절간의 규칙상 혼자서는 책을 함부로 읽거나 판단할 수 없었기에 하루 종일 그 성경책을 짊어지고 다니다가, 밤이 깊어 모두가 잠든 시간 방바닥 밑에 몰래 감추어 둔 성경을 호기심에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태선 스님은 다른 스님들의 눈을 피해 숨죽여 가며 성경을 무려 여섯 번이나 독파했습니다. 그리고 불교의 세계관 속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던 거대하고도 충격적인 영적 진리들은 자신의 영혼을 뒤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첫째는 ‘신관’의 차이였습니다. 불교의 주인공인 석가모니는 천지를 창조한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나 고뇌하다 죽어간 뛰어난 스승이자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도를 닦고 지식을 쌓아도 피조물일 뿐 결코 스스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 성철 스님이 마지막 죽음의 문턱에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읊조렸던 것처럼, 인간은 결코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온 우주 만물과 인간을 직접 빚으시고 창조하신 절대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였습니다. 피조물이 만든 우상에게 복을 비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성경 구절이 그의 눈을 뜨게 만든 것입니다.
둘째는 지은 죄를 용서받는 ‘속재법’의 본질적인 차이였습니다. 불교는 철저한 인과응보와 자력 구원의 종교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내가 한 번 잘못했으면 두 번 선한 일을 해야 하고, 아버지가 지은 죄의 업보를 아들과 손자가 대물림하며 받아내야 하는, 결코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죄의 종교였습니다.
셋째는 죽음 이후의 세계였습니다. 불교는 죽으면 끝없는 여섯 갈래의 세계(천상, 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를 뱅뱅 도는 윤회를 말합니다. 내가 죽어서 내 영혼이 개가 될지, 지렁이가 될지, 물고기가 될지 알 수 없는 기괴하고 불안한 세계관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명확했습니다. 흙에서 온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혼은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 영원한 천국 낙원에서 눈물도 슬픔도 없이 부활의 소망을 누리는 은혜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의 거대한 석가모니 무덤이나 중국의 공자 무덤과 달리, 이스라엘 성지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생명의 구주이심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죽은 송장과 뼈다귀 앞에 복을 빌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가치 있는 길임을 마침내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17년 동안 몸담았던 절간을 뛰쳐나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절에 있으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이 다 공짜이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면 당장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계의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던 중 너무나 피곤하여 밀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시 누워 잠이 들었다가, 주지 스님에게 발각되어 사정없이 대나무 매질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놈아, 잠을 자려면 방에 가서 잘 것이지 왜 감히 신성한 부처의 발치에 다리를 뻗고 누워 있느냐!"라며 먼지가 나도록 흠씬 두들겨 맞은 태선 스님은 쓰라린 몸을 이끌고 주저앉아 펑펑 울며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자는 사람은 지나가던 개도 때리지 않는다는데, 대자대비하다는 불교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이토록 사정없이 때리는가. 내가 17년을 이 고생을 하며 참선해도 내 마음의 분노 하나, 탐욕 하나 지우지 못했으니 이 길은 가짜구나.'
그 순간, 머릿속에 성경에서 읽었던 예수님의 음성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석가모니 부처는 80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인간을 향해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겠다"라고 선포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스스로 도를 닦고 짐을 지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무거운 짐을 대신 져주시겠다며 자신 있게 초청하고 계셨습니다. 태선 스님은 마침내 결단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 있다면 나를 먹여 살리시겠지!"
그러나 세상 밖으로 나온 개종자의 삶은 곧바로 축복 탄탄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17년 형을 살고 나온 흉악범인 줄 알고 무서워하며 모두 내쫓아 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자리를 소개해 주겠다며 다가온 두 명의 젊은 청년들에게 속아 인적 드문 다리 밑으로 끌려갔고, 강목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 가진 돈을 몽땅 털려버리는 처참한 강도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돈도 없고, 몸은 부서졌고, 의지할 사람 아무도 없는 절체절명의 극한 상황 속에서 그는 비로소 지식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생명을 구원하실 유일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미친 듯이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계시다면 나를 살려주십시오! 나 같은 죄인도 품어주십시오!"
지독한 고독과 눈물의 기도가 끝난 이튿날, 기적처럼 한 사진관의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 기술을 가르쳐 주며 먹고 잘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6개월 만에 사진사 기술을 전수받아 자립하게 된 그는, 영적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낮에는 사진관에서 피땀 흘려 일하고 밤에는 야간 신학교(칼빈신학교)에 입학하여 오후 6시 반부터 밤 10시 반까지 죽어라 신학 공부를 매진했습니다.
등록금이 없어 학비가 밀리고 신학교에서 퇴학을 당하는 좌절을 겪으며 한때 삶을 포기하고 자살하려 소주 일곱 병을 들이붓고 커브길 도로에 누워 죽음을 자처하기도 했던 상처투성이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의 강한 손은 그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연단과 광야의 훈련 끝에 그는 마침내 기독교대한감리교회의 정식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 김진규 목사로 운명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목회자가 된 김진규 목사의 가슴속에는 평생 풀지 못한 무거운 숙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경북 일월사에서 74년 동안 평생을 태고종 주지 스님으로 늙어 가고 있던 그의 육신의 아버지, 원구 스님을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3대째 내려온 골수 불교 집안의 수장인 주지 스님 아버지를 전도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아버지는 "너와 나의 자식 인연은 끝났다! 당장 내 절간에서 나가라! 무식하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라며 대문 밖으로 그를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김진규 목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제 아버지가 평생 우상을 섬기다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을 눈 뜨고 볼 수 없습니다. 전도할 지혜와 능력을 주십시오."
목사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매일 밤 노스님 아버지의 방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떨어져 살며 느꼈던 부모의 은혜와 효심을 담아 직접 작사한 ‘효도가’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임신 중에 열 달 동안 지나실 때에 불편하고 어려우심 어떠했으며, 해산할 때 배 아파서 고생하신 그 은혜 평생 잊지 못하리..."
염불은 잘하지만 찬송 곡조는 서툴렀던 아들 목사가 노스님 아버지를 향해 눈물로 이 효도가를 부르기를 무려 4개월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거듭했습니다. 74세의 늙은 주지 스님 아버지는 매일 밤 자신을 찾아와 발을 닦아주며 눈물로 효의 노래를 부르고 천국 복음을 전하는 아들 목사의 진심 어린 변화에 마침내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혔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내가 평생 절간에 있어 보니, 젊을 때는 수많은 불자 자식들이 복을 달라고 찾아오더니 내가 늙고 병드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더라. 인생은 결국 다 늙으면 헛것이요 무소유일 뿐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살아서 부모에게 진짜 효도하는 종교구나. 네가 믿는 하나님이 너 같은 중을 인간 만들어 돌려보낸 것을 보니 참된 신이 맞다. 나도 너를 따라 예수를 믿겠다."
74세의 노스님 아버지는 평생 입었던 승복을 벗어던졌고, 아들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주님의 자녀로 회심하는 가문의 대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회심한 아버지는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일월사 절간을 하나님의 전으로 내놓았습니다. 김진규 목사는 그 절간을 과감히 허물어 버렸습니다. 당시 돈이 없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던 시골 마을의 가난한 청소년들을 전도하기 위해, 절을 부순 그 자리에 ‘고등공민학교’를 세웠습니다.
절간을 허물고 부처 상을 끌어내릴 때, 동네 사람들은 "천벌을 받아 벼락 맞아 죽을 것"이라며 손가락질하고 저주했지만, 부처 동상 밑에 썩어 문드러진 벌레들만 가득할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김진규 목사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시골 아이들을 모아 교장이자, 담임이자, 12개 과목을 홀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밤낮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며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 결과, 절간이 변해 학교가 되었고, 그 학교가 나중에는 경북 영양군의 사동교회라는 아름다운 주님의 성전으로 완전히 탈환되었습니다.
그 학교를 거쳐 간 시골 아이들 중에서 목사가 3명, 장로가 7명이 배출되었고, 대학교수와 고등학교 교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축복의 명문가로 지역 전체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오늘 아침, 인생의 무거운 문제를 짊어지고 마치 산속의 수행자처럼 홀로 고군분투하며 고행을 겪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을 기대하는 하루가 되어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