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덩이가 아무리 깊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깊지 않기 때문입니다.
덩치만 컸지 속은 여린 중학생 스탠리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도둑으로 몰립니다. 스탠리는 이렇게 운이 나쁜 것이 그의 고조할아버지가 남의 집 돼지를 훔치다가 들켜서 저주를 받은 후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이 지독히 운 없는 소년은 뜨거운 텍사스 사막 한가운데 소년원에 갇힙니다.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란 작품의 개요입니다. 작가는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분명 저주에 걸린 것 같다. 정말 억울하다. 부모님 탓이야'라고 느끼는 청소년들을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네가 여기에 있는 건 한 사람 때문이야. 그 사람만 아니었으면 네가 이 더운 뙤약볕 아래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지 않았겠지. 그 사람이 누군지 아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돼지 도둑 고조할아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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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펜덴스키 씨가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너야, 스탠리. 네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바로 너 때문이야. 너에 대해서는 네가 책임을 져야지. 네가 인생을 망쳐놨으면 그걸 고치는 것도 너한테 달린 거야. 어느 누구도 널 대신해서 해줄 사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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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쉬운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게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지."
避坎落井(피감낙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구덩이를 피하자 우물에 빠진다는 뜻으로, 한 가지 어려움을 피하고 나니, 또 다른 어려움이 닥칠 때를 말합니다. 혹시나 월요일 아침에 피감낙정의 하루가 이어지고 있는 여러분이 있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구덩이가 아무리 깊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깊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깊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흘리신 주님의 눈물은 그 어떤 구덩이와 수렁의 깊이보다 깊은 눈물입니다. 혹시나 구덩이에 빠졌다면 가장 중요한 일은 구덩이 파기를 멈추는 일입니다. 그리고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 42편 2절]
할렐루야~ 분명 이 아침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